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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
- 2024년 노벨문학상 한강 수상 이유 (출처: 위키백과)
오랜만에 쓰게 된 책 리뷰는 '채식주의자'가 되었습니다. 뉴스에서 들어보셨겠지만 최근 11월 이 책을 쓴 작가 '한강' 씨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문학상이며, 여성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라는 뛰어난 기록을 남기게 됐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한강 작가의 소설을 집기 시작했으며 그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저입니다.
사실 저는 한강 작가의 책은 나중에 읽으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니만큼 인기가 과도해져서 최근 공공도서관 시스템이 마비가 된 것 같았거든요. 지금도 상당한 인기고 대출 예약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지금 대출하려 하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그래서 대출 난이도는 리뷰 재개 이후 처음부터 바로 5점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집 근처 공공도서관에서 이 책을 추가로 구매해주지 않는다면 대출을 할 때까지 오랜 기간이 걸릴 테니 빨리 읽고 싶다면 직접 구입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저는 이 책을 예약해 두고 1달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의외로 빨리 대출 예약이 돌아와서 다른 책을 제치고 이 책부터 읽게 됐네요.
혹시 저처럼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이 책으로 처음 접한, 그리고 접하게 될 예정인 사람들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보내드립니다. 현재 리뷰 작성일자 12월 17일 기준 이 책은 교보문고 종합 2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인기와는 느낌이 다르게 이 책은 굉장히 폭력적입니다. 그리고 19금이죠. 아마 인기 1위인 '소년이 온다'나 '작별하지 않는다'도 비슷하겠지만 한강 작품의 소설은 폭력적인 장면이 많아 처음 접해보니 꽤나 쇼킹했습니다. 여담으로 이 책은 한때 유해도서로 지정된 바 있어서 작가님이 억울해하셨다고 들었는데 직접 읽어보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도 들었죠. 물론 이보다 더 심한 건 다른 장르소설들을 뒤져보면 훨씬 많기에 유해도서로 지정된 건 정말 골 때리는 일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이 책의 유해함(?)은 예전부터 들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예상은 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아래부터는 스토리 스포일러가 있으니 아직 소설을 읽지 않으신 분들은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설은 3부작 연작 소설입니다. 각 소설은 제목이 따로 정해져 있는데 출판 시기가 다른 스토리가 이어지는 작품 3개를 하나로 묶은 게 지금의 채식주의자 소설입니다. 채식주의자란 제목은 1부의 제목을 그대로 따온 것이죠. 그리고 그 채식주의자의 정체는 주인공 '영혜'입니다. 사실 2부를 보면 영혜가 말하는 채식주의자는 선택적 채식주의자죠. 우유가 들어가 있을 아이스크림을 먹는 게 완전한 채식이라고 할 순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중요한 건 영혜가 채식주의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채식주의자를 넘어선 광기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더 경악하게 만드니까요. 그래서 소설 제목은 채식주의자긴 한데 더 읽어보면 채식주의자는 그리 중요한 뜻은 아닌 것 같습니다.
1부인 채식주의자를 읽기 시작하면 여러분들이 이 책을 더 읽을지, 아니면 때려치울지 결정해야 될 것입니다. 1부에서는 영혜가 남편의 눈앞에서 어느 날 갑자기 고기를 치워버리면서 고기를 먹지 않게 되고 급기야 주변 사람들에게 난리를 피우면서 정신병원에 감금됩니다. 이 과정이 살벌해서 읽을 때 굉장히 찝찝했는데 비위가 약한 분들은 읽기를 권장드리지 않습니다. 그 뒤 2부는? 2부는 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줄거리를 요약하기 힘들 정도로 19금인 상황이 벌어지죠. 1부에서 간을 보던 작가는 2부의 클라이맥스로 여러분을 수렁에 빠뜨립니다. 1부는 그럭저럭 읽었어도 2부의 그 장면을 읽는 순간 어쩌다 보니 잠시 멈추고 며칠 시간을 둔 뒤 다시 읽게 됐죠. 1부보다 이 2부 때문에 높으신 분들이 유해도서로 지정했을 법합니다. 그래서 저도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한때 영화로 나온 채식주의자도 아마 이 부분의 수렁에 빠져 19금 포르노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1부는 그냥 광기라면 2부는 심연의 끝이죠.
1부부터 3부까지 모두 다 폭력, 폭력, 폭력으로 점철된 작품입니다. 그렇기에 웬만한 사람들은 처음 이 책을 읽으면 최소한 어느 한 부분에서는 불쾌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나마 3부가 소설 마무리를 위한 결말부로 한숨 돌릴 수 있는 구간이죠. 이 모든 스토리 안에서 영혜는 끝도 없는 폭력을 당합니다. 직접적으로는 남편 등의 주변 사람들,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영혜의 아버지가 이 모든 것의 시작점으로 보입니다. 아버지가 과거에 했던 일이 영혜의 마음속에서는 트라우마가 되었고 고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하고 있으니까요. 아버지의 일로 인해 영혜는 고기는 생명을 죽여서 얻는 것이라는 걸 잔인하게 깨달았습니다.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폭력에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지는 행위기 때문에 거부하는 것이겠죠. 그렇게 보면 3부까지 그가 하는 모든 행위는 '모든 폭력을 거부한다'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가능할까요? 불가능합니다. 특히 사회가 그렇습니다. 소설에서도 나오지만 사람이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 죽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칠게 말하면 그것은 사회 구성원이 사라지는 일이기 때문에 사회에서는 사람이 죽는 것을 방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현대사회에 절여져서 무의식적으로 폭력을 당연하게 여기게 뇌가 프로그래밍되어 있습니다. 고기는 배 터지게 마음껏 먹을 수 있는 풍요로운 사회고 광고나 유튜브에서는 먹방을 하면서 음식을 더 많이 권유하는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고기, 고기뿐만 아니라 채소도 결국 생명을 빼앗는 폭력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행복하게 오래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영혜는 살아가는 데 중요한 폭력까지 거부하고 있습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올 것 같은 삶에서 쌓아 올린 덩어리가 폭력 덩어리란 걸 스스로 깨닫게 된 거죠. 소설 속에서 사람들은 영혜에게 폭력을 행사했지만 그 이전에 영혜 또한 한 사람으로서 무수한 생명체를 폭력으로 대한 가해자란 것입니다. 그걸 깨달으니 미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인간인 이상 그가 무폭력을 행사할 수는 없습니다. 2부에서는 그 트라우마를 어느 정도 떨쳐낸 듯하지만 결국 이후의 사건이 영혜를 돌이킬 수 없는 정신 이상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2부의 제목인 '몽고반점'은 어린이들에게만 나타나는 엉덩이의 반점이지만 영혜는 아직까지도 이 반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부의 사건을 언급하지 않고 간단히 짚고 넘어가면 그에게 몽고반점이 있다는 것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생명체의 증거 아니었을까 싶군요. 비록 성인이 되었지만 영혜는 자신의 언니가 아이를 낳았을 때 아이를 신기하게 여긴 것처럼 좀 순수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면모로 영혜가 1부의 상황을 일으켰고 2부에서는 가해자가 범죄를 일으킨 원인이 되었습니다. 사회 속에 지쳐 있던 가해자는 영혜가 가진 생명체의 순수함에 어느덧 끌리고 만 셈이죠. 하지만 그것은 사회적으로 범죄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영혜는 그 상황에서 전혀 저항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그 사건은 폭력으로 여기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1부에서 선을 넘어버린 영혜는 비슷하게 도덕적이지 않은 행위에 무감각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죠. 모든 폭력을 거부한다는 것은 사회와 도덕적인 선도 넘어설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2부까지 언뜻 보면 이 소설은 페미니즘 소설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1부에서는 가부장적인 성향을 보이며 과거와 현재까지 괴롭히는 아버지, 영혜의 상황을 전혀 이해해주지 못하고 거부한 남편에 이어 2부까지 모두 남성들이 영혜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든요. 그런데 3부에서 이 이미지가 바뀝니다. 3부는 영혜의 언니인 '인혜'가 스스로 영혜를 폭력에 빠뜨렸다는 걸 마음 속으로 자백하는 상황이거든요. 그러니 1부부터 3부까지 모두 피해자인 영혜의 시점으로는 서술되지 않고 남녀 상관 없이 가해자의 입장에서 서술되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1부 중간에 꿈 내용으로 영혜의 시점이 나오기는 하는데 그것이 주된 시점이라고 보기엔 애매하죠.
모든 폭력을 거부한 대가로 주변 모두를 해체해 버린 영혜에 대해 인혜는 분노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또한 영혜의 사건들로 자신이 영혜를 폭력에 빠뜨린 사람이란 걸 깨닫습니다. 사실 인지하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을 뿐이죠. 그렇게 그는 귀를 막고 평범하게, 어쩌면 누구보다도 더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2부의 사건으로 그는 더 이상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영혜를 그렇게 엇나가게 만든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자기 자신이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다른 모든 사람들이 포기를 할 때 인혜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영혜가 느낀 그 폭력을 인혜 또한 느꼈고 자신 또한 영혜처럼 마음속에 폭력 덩어리를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비록 영혜의 저항은 실패했을지라도 그 마음은 인혜에게 이어져 인혜 또한 폭력에 저항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죠. 영혜처럼 모든 폭력을 거부할 수는 없겠지만요. 그래서 다 읽고 나니 저는 인혜 또한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처럼 느껴졌습니다.
인혜가 이렇게 변할 것은 1부에서 복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1부 마지막 영혜가 가진 새는 가슴이 뜯겨 있는데 3부에서 인혜의 아들이 본 꿈에서 인혜는 새로 나타나거든요. 그 또한 영혜처럼 덩어리가 분출될 것 같은 기분을 느꼈고 소설 마지막 행동을 보면 폭력을 똑똑히 바라보겠다는 마음으로 변합니다. 영혜가 되고 싶었던 나무는 모든 생명을 보듬을 수 있는 생명체이면서 동시에 그가 바란 것처럼 아무런 의사를 하지 못 하는 죽은 생명체처럼 보입니다. 그 숱한 나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인혜는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요?
정말 황당한 꿈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재밌게도 인혜 또한 이 상황이 꿈이 아닌가, 즉 소설 속이 아닌가? 를 느낀 것 같습니다. 이 책을 다 읽었다면 우리는 채식주의자라는 꿈에서 깨어난 것이 됩니다. 우리는 그 꿈에서 깨어나서 무엇을 느끼고 있나요? 네, 바로 저항감입니다. 저는 작가가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스토리를 몰고 간 것은 우리가 저항감을 느끼길 의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노벨문학상 작가니까요.) 이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인식하지 못 하던 폭력을 인식하고 말았고 앞으로 현실에서도 폭력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작가의 의도로 퐁당 빠진 것이기에 우리는 거부할 수가 없죠. 그런 면에서도 저항감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전처럼 그저 모르는 체 폭력을 무시하거나, 아니면 폭력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노벨문학상을 발표한 한림원에서는 한강 작가의 수상 이유를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채식주의자가 근원적인 폭력에 대해 다뤘다면 아직 읽지 못 한 소년이 온다나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림원에서 언급한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룬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채식주의자 책이 나온 건 2007년이었으니 작가는 지속적으로 이 문제들을 다룬 셈입니다. 그간 몇몇 한국의 소설가들이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점쳐져 있었지만 한강은 꾸준한 문제 제기가 있었기에 이 상을 충분히 수상할 만했다고 여기게 됐습니다. 제가 그나마 알고 있는 후보들은 연세가 많으셔서 작품 활동을 거의 안 하는 분들이기도 했고요.
아직까지 의문점이 많이 남은 정말 어려운 작품이었습니다. 이 책을 2025년 첫 번째로 읽을 생각이었는데 일찍 예약이 오는 바람에 계획이 좀 어그러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12월에 그 일이 일어나면서 한강의 소설 인기는 더 폭등했기에 더 의미 있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특히 소년이 온다 쪽은 어마어마하게 팔리고 있는 중이기에 나중에 꼭 이 소설도 읽어 보고 싶군요. 채식주의자도 이번 사태와 연관되지 않았다고 볼 수가 없었죠. 어느 순간 우리가 무시했던 것들이 결국 거대한 폭력으로 다가온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려운 책이긴 했지만 이 책으로 한강 작품을 시작한다면 다른 작품을 읽을 때 좀 더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쉬워지리라 생각합니다.
채식주의자에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폭력을 목도하십시오. 그리고 저항하십시오.
채식주의자를 시작으로 2025년부터 저는 한 달에 한 작품씩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의 작품을 읽고 리뷰를 쓸 계획입니다.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건 교보문고에서 2025년 노벨문학상 탁상달력을 판매하는 걸 보고 이걸 기준으로 내년 독서 계획을 해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죠. 12월부터 일찍 시작하기로 해서 이렇게 한강의 작품으로 첫 안타를 쳐 봅니다. 원래 2025년 1월에 읽을 책이었기에 다음 1월에는 다른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책으로 리뷰를 써보겠습니다. 당분간 은하철도 999 리뷰 때문에 평일에 올라올 겁니다.
길었지만 오랜만에 책 리뷰를 마칩니다. 제 리뷰는 원래 리뷰 길이가 들쭉날쭉한데 채식주의자 소설이 오랜만에 꽤나 명치를 맞은 듯한 기분이었기에 스포일러를 포함해 길어졌습니다. 다음 리뷰도 짧을지 모르나 기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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